오, 이란

 

이란에 온 지 정확히 열흘이 지났다. 7월 23일 인천을 출발해 두바이를 거쳐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Imam Khomeini) 공항까지 오는 여정은 15시간이 걸렸다. 길다고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하지만 물리적 시간과 거리를 떠나 우리에게 이란은 분명 먼 나라이다. 부시 정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악의 축 국가 중 하나, 피비린내 나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당사자, 최고지도자가 가장 큰 권력을 갖는 신정일치 국가, 끊임없는 핵개발 야욕, 매너없는 플레이로 일관하는 침대축구... 이 정도가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이 이란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닐까?

 

이란 근무 발령이 난 후, 두 달 정도 이란에 대해 탐색했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란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확립한 나라, 지리적으로는 중동이지만 아랍 문화와는 차별화된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 한때 제국을 이루었던만큼 커다란 역사적 자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 한국보다 온화한 기후에 사계절이 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는 곳... 단순히 경제발전 정도를 기준으로 선진국, 후진국을 가르는 우리 특유의 정지된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다양함이 이란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이란에서의 4년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로도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는 티베트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감히 그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4년동안 이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앞으로 4년 후, 이란에서의 4년이라는 책을 쓴다면 무슨 내용이 담기게 될까? 적어도 악의 축, 핵개발, 경제봉쇄 등 부정적인 키워드만으로 가득차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열흘 정도 지내면서 든 생각은 이란은 모든 것이 다 다르구나, 그러면서도 다 똑같구나 였다.

 

오늘은 이란력으로 1392년 5월 12일이다. 게다가 이란의 숫자 표기방식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특히 4, 5, 6은 아랍권의 숫자 표기법과도 다르다. 슈퍼마켓에 가서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려고 하면 우선 우리와 다른 숫자표기법을 익혀야 하고, 오늘이 이란 달력으로 며칠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현지통화 단위인 리알(Rls)화의 약세로 1달러는 현재 약 31,000리알 정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1달러에 10,000리알 정도하던 것이 어느 순간 30,000리알을 넘기 시작했다. 리알화의 가치 하락 때문인지 현지인들은 10리알을 가리키는 토만이라는 단위를 더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2013년 8월 10일까지이고 우리 돈으로 약 1000원 정도하는 우유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우유에는 ۹۲/۰۵/۱۹라고 유통기한이 적혀있을 것이고 가격표에는 ۲۸۱۸۲Rls 또는 ۲۸۱۸Toman이라고 적혀있을 것이다. 1달러당 환율을 우리돈으로 1100원, 이란 현지화로 31000리알로 가정했을 때 천원은 약 28182리알이다. Rls 앞에 있는 숫자가 바로 그것이다. 10리알인 토만 단위로 적어놓았다면 2812라고 쓰여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란력으로 2013년 8월 10일은 1392년 5월 19일이므로 유통기한은 92/05/19이 되고 페르시아 숫자로는 ۹۲/۰۵/۱۹가 된다. (페르시아 숫자로 0123456789 = ۰۱۲۳۴۵۶۷۸۹)

 

하지만 이란 슈퍼마켓에는 정말로 맛있는 유제품이 넘쳐나고 아몬드와 피스타치오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또한 한국 과일에 비할 만큼 당도가 높은 다양한 과일이 존재한다. 그들도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코를 낮추는 성형수술이 유행할 정도로 외모에 관심이 많다. 보통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인데 어제는 식당에서 반창고를 붙인 남자도 보았다. 핵개발과 미국과의 관계는 자신의 삶이 나아지는 데 별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서민이 대다수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대한민국에서 접했던 이란이 거시적인 모습의 일부라면 여기서 부딪히는 이란은 미시적인 삶의 실상이 될 테니까.

 

이란에 이런 일이

 

이 블로그는 앞으로 이란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나의 감정과 소회를 소개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업무에 치여서 매일 감상을 나누지는 못하겠지만 최소 일주일에 2회 이상은 업데이트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이란의 모습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곳에 대한 애정을 갖고 나만의 새로운 시각을 담아내고 싶다. 이 공간이 당신이 생각하는 이란과 내가 살아가는 이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조그마한 바자르(Bazaar, 場)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Posted by 페르시안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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