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의 관광지는 어디일까?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이란은 테헤란과 동의어 혹은 대체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서울이 대한민국의 전부가 아니듯이 이란이슬람공화국에도 많은 도시가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말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어디나 수도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모여드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런던이 그렇고, 파리가 그랬으며, 로마는 그렇고 그랬다. 한 나라의 중심인만큼 수도는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드나들 것이며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외국인 노동자도 늘어나고 있을 테니까.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터키, 이라크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도 마찬가지다. 수도 테헤란은 아직 메트로폴리탄까지는 아니겠지만 이란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시이며 그만큼 번잡한 삶의 군상을 품고 있다. 이란 작가 아미르 하싼 체헬탄이 <스테이>에서 '황홀한 지옥의 종착역'이라고 테헤란을 표현했듯이.

 

ⓒ페르시안우기: 테헤란 지하철 2호선 샤히드 나바베 사파비 역.

 

이란 발령을 받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가장 많이 접한 여행지는 테헤란이 아니라 에스파한(Esfahan)이었다. 페르시아어로 Nesf-e Jahan이라는 표현이 도시 이름으로 굳어진 것인데, 이는 세상의 절반(Half of the World)이라는  뜻이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반세(半世) 정도면 될까? 사파비 왕조는 집권 기간 동안 딱 세상의 절반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싶었고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론리플래닛 이란편을 보면, 이란 여행에서 해야 할 첫번째 경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두번째는 에스파한에 가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지금 시점에서 에스파한이 세상의 절반은 아닐지라도 이란여행의 절반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그 에스파한에 가고 싶었다. 광복절을 맞아 때마침 사무실은 휴관을 했고, 나는 에스파한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준비를 한 건 아니고, 배낭여행하던 학생 때의 야성과 무모함만 끄집어냈다.

 

ⓒ페르시안우기: 에스파한 시오세 다리에서 아내와 함께. 구도가 좋다.

 

시작은 야무졌다. 나는 빠른 현지적응을 위해 웬만하면 택시를 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집에서 30분 정도 걸어 정거장까지 갔고 테헤란 북부터미널 근처로 가는 시내버스에 무사히 올라탔다. 대부분 테헤란은 걷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고 했지만 걸어보니 못 걸을 만한 곳도 아니다. 테헤란의 시내버스 비용은 4000리알인데 우리 돈으로 약 150원 정도이다. 한국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싼 비용이지만, 택시비 역시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이기에 대부분은 택시를 애용한다. 물론 택시의 시설 역시 딱 한국의 절반 정도이지만. 버스에서 내릴 곳을 찾아보다가 이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택시를 안 타길 잘했군, 속으로 뿌듯해하며 여성전용칸에 앉은 우리 아내 Y를 호출했다. 참고로 이란은 여성과 남성의 좌석이 분리되어 있다. 여성이 남성칸에 탈 수는 있어도 남성이 여성전용칸에 탈 수는 없다. 하지만 남성칸에 탄 여성이 거의 없어서 우리는 버스를 탈 때 생이별을 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도 된 양.

 

ⓒ페르시안우기: 테헤란 북부터미널 아르잔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공원을 가로질렀다. 테헤란은 한국보다 공원이 많고 관리도 잘 되어 있다. 산유국이라 기름값이 무척 싸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도 나도 차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가 노후화되었고 엄청난 매연을 거리에 흩뿌리고 있다. 공기가 안 좋은 만큼 의도적으로 공원을 많이 만들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공원에는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이 많았다. 특히 손자와 함께 나온 할머니, 할어버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깔끔한 공원에 새삼 놀라는 사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테헤란에는 터미널이 권역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르잔틴이라는 북부 터미널이었다. 여기서 에스파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는 VIP와 마흐물리라는 일반버스 두 종류가 있었고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우리는 19만 리알에 VIP표를 끊고 탔는데 우리나라의 우등버스보다 훨씬 시설이 좋았다. 우리 돈으로 치면 6000원 정도 되니까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에 말이다.

 

ⓒ페르시안우기: 과자상자를 펼쳤더니... 종이컵까지 넣어주는 센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수 겸 승무원으로 보이는 친구가 무언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 언젠가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서 본 적이 있는 과자상자였다. 카스다드처럼 생긴 파이와 달콤한 쿠키가 들어있었다. 게다가 시원한 물은 마음껏 가져다 먹는 셀프 무한 리필이었다. 좌석 공간 역시 비즈니스석처럼 넓어서 비행기를 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에스파한까지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휴게소에도 한 번 들르길래 햄버거를 사먹었다. 이란에는 제재 탓인지 다국적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없지만 동네에서 파는 햄버거는 대부분 맛있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맛있는 햄버거를 뒤로 하고 버스는 시간이 되자 다시 출발했다. 여전히 황량한 바깥 풍경에 졸기도 하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미리 다운받아놓은 썰전을 보기도 하고, 로제타스톤으로 매일 아침마다 박차를 가하고 있는 페르시아어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페르시안우기: 시내버스에서 만난 에스마일. 금세 친구가 됐다.

 

어느새 에스파한 표지판이 보였고 5시간 반만에 우리는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내 중심부까지 가려면 버스나 택시를 타야했다. 택시를 타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지 않기 위해 여행자 안내 센터를 찾았다. 우리는 91번 시내버스를 탔고, 요금은 테헤란보다 1000리알 비싼 5000리알이었다. 친절한 이란 국민답게 터미널 직원이 버스 정거장에서 헤메고 있는 우리를 거들었다. 버스가 도착한 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에게 저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해준 것이다. 급하게 버스에 올랐고 운좋게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버스 옆자리에는 이번 에스파한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이란인 친구 에스마일(Esmaille)이 앉아 있었다. 딱 봐도 여행객처럼 보이는 내게 그는 도움이 필요하냐고 먼저 물어왔고,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예약한 숙소가 없었다. 묵을 곳을 찾기 위해 에스마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튜디오 녹화처럼 순조롭게 흘러가던 우리의 여행은 야생 버라이어티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Posted by 페르시안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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